문화종합

집값, 에너지 문제…미국 진보의 무능을 꼬집다

 미국 진보 진영 내부에서 터져 나온 날카로운 자기반성의 목소리가 화제다. 진보 성향의 유명 언론인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이 신간 '어번던스(Abundance)'를 통해, 선한 의도로 가득했던 진보 정책이 어떻게 사회에 필요한 ‘풍요’를 파괴하고 결핍을 초래했는지 통렬하게 고발하고 나섰다.

 

저자들은 현대 미국 진보주의가 심각한 모순에 빠졌다고 진단한다.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환경을 지키기 위해 겹겹이 쌓아 올린 규제와 절차들이, 역설적으로 주택, 에너지, 교통 등 필수적인 사회 기반 시설의 공급을 가로막는 족쇄가 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이상이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무능한 권력’을 낳았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캘리포니아의 고속철도 건설 사업은 끝없는 의견 수렴과 환경 평가에 발목 잡혀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대도시의 주택 공급은 각종 규제에 막혀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을 잡지 못했다. 저자들은 이를 ‘모든 것을 하려다 아무것도 못 하게 된 리버럴리즘의 함정’이라고 명명한다.

 

책이 지적하는 미국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도 낯설지 않다. 주택 공급 부족으로 인한 부동산 가격 폭등, 신재생에너지 시설 건설을 둘러싼 지역 갈등 등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한국 사회가 직면한 공통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좋은 명분이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키는 상황은 우리에게도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저자들은 분배와 평등이라는 진보적 가치를 폐기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물질적 풍요’의 복원을 역설한다. 불평등 해소와 차별 철폐에만 집중한 나머지,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삶을 지탱하는 물질적 기반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데 소홀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다.

 

결국 ‘어번던스’는 이상주의적 목표 설정에만 매몰되어 현실의 작동 원리를 외면한 진보 진영에 대한 통렬한 경고장이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망이 어떻게 사회의 활력을 잃게 하고 결핍을 낳았는지, 그 과정을 복기하며 진정한 진보가 나아갈 길은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